박근혜정부 재난대응시스템 침몰 … 재구축 불가피

2014-04-22 12:14:18 게재

중대본 통제역할에 집착해 사고초기 정부기관 우왕좌왕

박 대통령 "강력한 재난대응체계 필요" 전면 재편 시사

경주마리나리조트 붕괴사고와 세월호 침몰사고 등 후진국형 재난에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국가재난대응시스템을 전면 재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강력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분주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지난 1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직원들이 전남 진도해상에서 발생한 여객선 침몰사고에 대한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에 탑승한 인원에 대한 번복을 수차례 하면서 본부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중대본 무용지물 = 현재 우리나라는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중심으로 관련 부처가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시스템이다. 사회적재난과 인적재난의 경우 안전행정부가 컨트롤타워를 맡아 사고수습본부와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를 지휘하도록 돼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의 경우 해양사고인 만큼 사고수습본부가 재난대응 현장지휘부 역할을 맡고 중대본은 범정부 차원의 인적·물적 자원 지원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중대본이 전체 상황을 통제하려 들면서 사고초기 정부기관들이 우왕좌왕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중대본이 통제할 전문적 능력은 없으면서 '통제' 역할에만 집착해 화를 키운 셈이다.

사고초기 탑승인원을 6차례나 번복하면서 중대본은 대통령과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통제기능도 함께 잃었다. 급기야 법에도 없는 땜방조직인 국무총리 주재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만들어지면서 중대본은 무용지물이 됐다. 하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총리 역시 산하에 사고대응에 필요한 전문 인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는 사고 이전 수차례 있었다. 지난해 11월 국회 입법조사처는 재난안전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조직의 지휘와 명령체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배재현 입법조사관은 "대규모 재난 발생 시 중대본부장인 안행부 장관이 중앙사고수습본부장인 다른 부처 장관을 지휘한다는 게 쉽지 않다"면서 "지역안전대책본부가 중대본과 중앙사고수습본부의 지휘를 받게 되면 혼선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재난안전법이 본회의에 상정되기 사흘 전인 지난해 6월 24일 열린 전문가토론회에서도 유사한 지적이 나왔다. 당시 류희인 희망제작소 재난안전연구소장은 "자연재난 인적재난 사회적 재난 등을 안행부가 일괄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안행부 만능주의적 발상"이라며 "각기 다른 개별법이 있는데 안행부가 다른 부처를 상대로 효과적 지휘통제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개정하면서 기존에 자연재난과 인적재난 모두 소방방재청이 대응하던 것을 자연재난은 소방방재청이, 인적재난은 사회재난에 포함시켜 안행부가 대응토록 이원화한 것도 문제다. 대부분의 재난은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이 겹친 복합재난이어서 현행과 같은 이원화 체계로는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안행부는 또 인적재난 업무를 이관 받는 과정에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은 거의 받지 않았다. 방재청에서 5급 사무관과 6급 주사 등 2명을 받았지만 이들을 한직에 배치했다. 중대본 핵심인력인 안행부 안전관리본부 내에 기술직 과장은 단 1명에 불과하다.

현 정부의 안전시스템이 사회안전에 치우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박근혜정부는 '국민안전종합대책'에서 중점안전관리 21개 분야를 설정해 놓았는데 여기에 성폭력 학교폭력 등 사회안전분야를 포함시키고 선박 항공 철도사고 등은 뺐다.

"재난대응시스템 손봐야" 목소리 거세 = 이 같은 문제점이 불거지자 재난대응시스템 전반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만 아직은 한 곳으로 논의가 모아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대통령 직속 국가위기관리 총괄기구를 두자는 의견부터 현장책임자가 전권을 행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까지 다양하다.

"대통령 직속에 국가 위기관리 총괄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쪽은 류희인 충북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류 교수는 "국가 위기관리는 대통령 국정수행의 중요한 한 축"이라며 "범정부 차원의 재난대응을 위해서는 대통령 직속의 위기관리기구가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긴박한 위기상황에서는 국무총리조차 부처 장관들과 현장 사고수습 기관들을 효과적으로 지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대본 본부장인 안전행정부 장관이 지휘체계를 세우지 못하고 현장 장악을 못한 것은 다른 부처 장관들을 지휘할 현실적인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지자체와 일부 전문가들은 현장 중심적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원철 연세대 교수는 "중대본이 현장상황을 모르는데 어떻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느냐"면서 "해난사고의 경우 해경에 지휘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들도 현장책임자가 전권을 행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구시와 경북도 등은 "구제역이나 조류독감(AI)이 발생하면 농림식품부 자체적으로 회의를 하고 대책을 마련한 후 같은 내용을 다시 중대본에 보고한다"면서 "보고만 받는 중대본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한다.

지난번 경주리조트사고에서도 이같은 문제가 확인됐다. 사고 초기에 도지사를 본부장으로 하는 경북도 재난대책관리본부를 꾸리고 경주시와 소방본부, 유관기관과 협조체제를 갖춰 시스템을 작동한 결과, 인력과 장비만 과잉 투입됐다는 것. 그러나 119구조구급단에 전권을 주자 현장상황 정리에 속도가 났다. 경북도 관계자는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소방서장이 전권을 가지고 현장을 지휘하고 상급기관과 대책본부는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기적은 언제 … 대한민국이 멈췄다
-금감원·국세청, 세월호 선주 일가 조사
-시신 바뀌고, 소독솜 모자라고…
-"내딸 왔구나, 이쁜 내딸 누가 죽인 거야"
-물살 약한 '조금' 이 구조 최적기 … 다음주 '사리'는 '최악'
-사망자 신원확인 여전히 주먹구구
-무인로봇, 실종자 수색에 '희망'
-1600만명 생명 소홀 '연안 여객선 관리' 철퇴
-해양조사원·진도VTS도 '엉터리 사고대응'
-8시10분 전화 미스테리 풀려 제주자치경찰이 전화
-세월호 선주일가 해외 거액 부동산 매입
-"승무원, 자기들만 아는 통로서 만나 탈출"
-"제발 살아 돌아와" … 전국으로 확산
-"쓰러진 63빌딩에서 눈감고 작은 방 찾는 꼴"
-"살아남은 아이들마저 죄인 된 심정"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임시분향소 설치
-단원고 수업재개, 병원수업 검토
-사라졌던 3분 36초 복구했더니
-박 대통령 호통 불구, 예고됐던 '복지부동'
-대형사고 터지기만 하면 국회 법 개정 '몸살'
-내각·청와대 개편도 예고

홍범택 기자 durumi@naeil.com,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최세호 기자 seho@naeil.com,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홍범택 기자 기사 더보기